Medicine/인턴일기

인턴 일기 - 동의서 받기

분홍오리 2019. 4. 20.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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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이 하는 대표적인 일 중 하나는 동의서를 받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동의서의 내용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때도 있지만 법적으로는 의사의 설명 의무...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 같기는 하다.

학생 때는 동의서 받는 항목이 따로 실습 시험에 포함되어 있어 이것을 연습해야 했다. 정석대로 하자면 일단 첫 멘트로는 환자분 확인을 위해 개방형으로 질문하고 혼자 오셨는지 (누군가와 같이 들을것인지) 묻고 시술자와 주치의 그리고 설명자 등등을 열심히 말해야 점수를 다 딸 수 있지만 이것을 실제로 모두 시행하는 것은 정말 불가능하다.

하지만 하루에 50-80개의 동의서를 업무 외의 시간 (2-3시간) 내에 해결해야 하는 우리들에게는 동의서 하나당 많아야 3분의 시간을 할애할 수 있을 뿐이다. 사실 환자분들에 따라서 설명을 더 요하는 환자분도 있고, 아닌 환자분도 있어서 그냥 사인을 해 주시면 정말 우리로서는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마음 한편으로는 혹시나 사고가 났을 때 내가 설명을 하지 않았다는 말을 들을까 불안한 마음이 있어 항상 가장 심각한 부작용은 꼭 설명을 해주고 있다. 물론 일어날 확률은 1/1000 이하라고 말하면서....

마취 동의서는 다른 동의서와는 달리 수술에 관한 질문들을 많이 받아서 난처한 경우가 많다. 환자들의 가장 흔한 질문은 내일 언제 수술을 받느냐는 것이다. 나도 정말 알려주고 싶지만... 수술이라는 것이 그 예정 시간에 맞추어서 칼같이 들어갈 수 없는 것이고 예정 시간에 맞추어 칼같이 끝나지 않으며 항상 변수가 있어 앞 수술이 지연되면 다음 수술도 지연 +지연 + 지연 되는 것이라 병원에서는 수술 시간을 알려주는 것을 싫어하는 듯 하다. 그치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인턴 의사들은 환자 한명한명의 병력은 커녕 수술을 언제 하는지 알아볼 시간이 없기 때문에 절대 알려줄 수 없다 ㅋㅋㅋㅋㅋ!!!!

질문을 받아서 시간이 지체되는 우리로서는 정말 저 질문이 답답할 뿐이지만... 내가 환자 입장에서 내일 수술하는 건 알겠는데 언제 내가 끌려가는지 모르면 답답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도 그런 것이 수술을 위해서는 금식을 해야 하는데, 수술이 계속 길어질 경우 금식 기간이 길어져서 환자가 매우 불편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저런 사정을 또 설명하면 내가 여기에 할애해야 하는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어머 간호사 선생님이 이따 알려주실거예요' '집도가 선생님이 수술 동의서 받으러 와서 자세히 설명해 주실텐데 그 때 물어보시면 돼요' ' 아직 확정 안 났어요' 등등의 핑계로 열심히 넘어간다.

가끔 내가 직접 마취를 하는 것도 아닌데 이 동의서를 받는 것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지우는가를 고민하게 된다. 나는 부작용을 설명할 뿐 내가 마취를 하는 것이 아니므로 이 부작용이 실제로 발생하면 책임은 누가 지는지 궁금하다. 사고가 설명의 의무를 다 했다는 것을 보이는 것이 나의 최선일 듯 하다....상황이 어떻든저번달도 그랬지만 이번달도... 내가 있는 동안 내가 받은 동의서, 내가 한 시술 중 아무 사고가 없기를 항상 기원하며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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