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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병동 당직을 맡을 때는유독 말기암 환자들의 경우, 사망선고와 임종에 대한 대비 등 죽음과 관련된 일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학생 때는 가족들을 다독이고, 진중하게 환자의 상태에 대해서 알려주면서 나쁜 소식을 전하는 교수님들을 보면서 의사라는 직업은 참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역할을 내가 하려니 정말 쉽지 않았다. 

 

#. O월 O일 사망하였습니다.

당직 시간동안 콜을 받았을 때, 지체 없이 가장 빨리 가야 하는 업무 중 하나는 사망선고이다. 가족들 앞에서 환자가 이제 고인이 되었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해야 하는 자리이니만큼 언제 하더라도 긴장되는 순간이다. 동공, 호흡, 맥박, 심전도를 주로 확인하게 되는데, 당연히 동공 반사가 없음에도 환자에게 혹시라도 생명의 징후가 있을까 항상 긴장하며 검진하게 된다. 도시괴담 같은 일이지만, 가끔 영안실에서 환자가 깨어났다는 뉴스가 보도되기도 하니 말이다.

죽음에 대한 가족들의 반응은 다양한 것 같다.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의료진을 원망하는 가족들도 있고, 정말 10명 이상의 가족들이 임종을 지키러 와서, 고인의 마지막 순간을 기리고 축복해 주는 경우도 있다. 임종의 순간들을 목격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슬퍼해주고 축복해주는 죽음은 행복한 죽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독 많은 가족들이 모여서 죽음을 애도하는 광경을 보면, 고인이 살아있을 적 참 좋은 사람이었겠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게 된다. 

 

#.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약을 최대 용량으로 쓰고, 산소를 최대 용량으로 틀어도 죽음이 점점 환자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하게 되는 때가 있다. 사실 보호자들도 언젠가는 환자에게 임종이 다가올 것임을 알고는 있지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임종 준비를 해야 겠다고 말을 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환자의 병력을 대강 파악하고 가서 설명하려고 하지만, 가족들에게 정말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겠습니다' 라고 입을 떼기까지는 정말 어려웠다. 가족들도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직감하였는지, 다른 가족들을 불러야할지 물어본다. 이렇게 미숙하게 환자의 상태에 대해 전하고 나면, 내가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서 과연 말할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정말 많은 생각이 든다. 한 번은 간호사 선생님도 많이 마음이 안 좋았는지, 안 좋은 소식을 전하고 병실을 나오는 나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환자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을 할 때, 많은 가족들이 '언제까지' 시간이 있는지 물어본다. 오늘 밤을 넘길 수는 있는지, 아직 가까운 가족이 오고 있는데 더 시간이 있는지...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죽음의 시점은 예측하기 어려운 것 같다.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오늘밤을 넘기기 어려울 것 같은 환자임에도 낮까지 버티는 환자도 있고, 그래도 오늘밤은 넘기겠지 하는 환자가 갑자기 악화되어 임종의 순간을 맞이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 더 편하게 해드릴걸

콜을 받고 처음 환자를 마주했을 때부터 이미 환자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던 경우가 있다. 간, 뇌로 전부 암이 전이가 되어 있는 환자로 간성 혼수인지 섬망인지, 이미 매우 괴로워하고 있는 환자였다. 옆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자녀에게 환자의 상태에 대해 설명하고, 심폐소생술 의향에 대하여 동의서를 받는 일은 정말 고역이었다. 나보다 어려보이는 친구가 '편히 보내드리고 싶어요' 라며 눈물을 뚝뚝 흘렸는데, 더이상 설명을 하는 것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자가 발버둥치고 있는 모습이 보여서 morphine 5mg(마약성 진통제) 처방을 내고 돌아섰다. 이후에 담당 간호사 선생님께 morphine이 효과가 있었는지 물었으나 효과가 없다고 하셨고, morphine civ(마약성 진통제 지속주입) 또는 ativan(진정제)를 사용할지 고민하였으나 호흡 저하가 오면 사망 시간이 빨라질까봐 그만두었다. 환자의 배우자가 환자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달려오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약 5시간 뒤, 환자가 사망한 것 같다는 콜을 받고 검진을 하러 갔을 때, 환자는 처음 봤을 때와는 달리 평안하게 누워있었다. 사망 선언을 하고 돌아서는데, 약을 더 드려서 가기 전까지 편하게 해드릴걸 하는 후회가 갑자기 들었다. 오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나는 사람에게도 이렇게 후회가 드는데, 주변 사람들에게 살아있을 때 잘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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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분홍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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