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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외과 실습의 마지막 날,
원래는 케이스를 받으면 모범적으로 매일매일 환자를 찾으러 가는게 맞지만... 나는 환자파악이 도저히 안되기도 하고 매일 여러 핑계를 대다가 결국 마지막날 나의 케이스 환자를 보게 되었다.

내 케이스 환자는 외상으로 두개내 출혈이 있고 나서 계속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 상태였다.
뇌출혈이 생기면 (경색이 생겨도) 뇌세포에 손상이 가기 때문에 손상 이후 점점 세포가 부어오르게 되고, 뇌는 단단한 두개골 내에 자리잡고 있어서 부으면 뇌압이 올라가다가 뇌탈출 (brain herniation)이 발생하게 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예방적으로 두개골을 절제하는 수술을 하게 된다. 내 환자도 딱 이 케이스였다. 나는 한 번도 두개골 절제를 한 환자를 제대로 본적이 없어서 궁금했다.

(craniectomy 관련 구글 이미지)

마침 나와 같이 실습을 도는 언니도 craniectomy (두개골 절제술) 환자를 보고싶어해서 나와 같이 중환자실에 가게 되었다. 전산상으로만 보던 환자를 처음으로 마주하게 되었을 때 환자는 그물망 같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 두개골을 절제하면 머리가 푹 꺼질 거라고 예상을 해서인지 머리의 부피가 정상으로 보이는 환자가 내 환자가 맞는지 싶었다. 같이 간 언니도 머리가 너무 멀쩡해보여서 두개골 절제를 받은 환자냐고 물을 정도였다. 그래서 환자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으니 이마에서 박동이 관찰되었다. 정상인이라면 뼈가 감싸고 있어서 박동이 보이지 않아야 할 곳에 상피만 있기 때문에 혈액의 박동이 그대로 보여졌다. 또한 혼자는 뇌출혈로 뇌가 부어 있었기 때문에 머리가 정상인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언니와 나는 둘 다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환자는 중환자실에 오래 있으면서 여러 번 감염을 겪었기 때문에 조심스레 장갑을 끼고 환자의 머리를 만져 보았다. 물컹. 나는 정말 두부같은 뇌를 만져보닸다는 사실에 기뻤고 언니는 너무 신이 났는지 중환자실에서 소리를 질렀다. 나와 언니는 신이나서 둘다 킬킬대며 조용히 웃었다.

난생 처음 두개골 절제술을 받은 환자를 만져본 언니와 나는 신이 나서 나머지 케이스도 열심히 신체검진을 시작하였다. 바빈스키 사인, DTR, pupil light reflex, corneal reflex 등을 열심히 시행하니 간호사 선생님께서 감염주의 환자이니 가운을 입으라 하셨다. 교수님과 레지던트 선생님께서 중환자실에서 학생은 들어오지 말라고 하고 입던 비닐 가운을 입으면서 언니와 나는 더없이 신나했다. 또 중환자실에서 바빈스키 검사를 더 열심히 해보고 싶어서 설압자를 찾으러 중환자실을 모험하듯 누볐다. 마지막으로 손을 씻고 나오면서 언니와 나는 큰 모험을 한 것 같았다. "와 신기하다." 그리고 하루 일과를 보내면서 언니랑 돌면서 머리뼈가 없는 뇌를 만져보고 신기해하던 순간이 참 행복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의 행복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있을 무렵, 우리가 행복을 찾는 공간이 너무 이질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질적'이라는건, 행복과 공존하기에 너무 이질적인 공간. 많은 환자들이 불의의 사고 이후에 집으로 가지 못하고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로 몇십 일을 보내다 가는, 그런 우울한 공간. 나와 언니는 뼈가 없어서 물컹물컹한 뇌를 만지고 신기해했고, 좋아했다. 다시 생각해보니 깨어나지 못하는 환자분에게는 참 안타까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며 죄책감도 들었다. 한편으로는 우울함이 가득한이 환경속에서도 결국 나는 어떻게든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습 과정에서 느끼는 행복은 참 이상하다. 우리는 누군가의 고통을 바라지는 않지만, 누군가의 병으로 또 고통으로 학구적 즐거움을 충족하며 생활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을 마주치며 젊음과 건강의 기쁨에 대해 여러번 생각하게 된다.

다시 생각해보니 우리가 행복한 이유는 머리뼈가 없는 머리때문이 아니었던 것 같다. 약품 냄새가 가득하고 생명의 파동이 멈춘 중환자실에서 우리는 생명이 넘쳐서, 젊어서,  아름다워서, 그래서 행복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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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분홍오리
배우고 싶고 나누고 싶은 밍밍이 건강, 의학 지식과 정보를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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