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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때 응급실 턴이나 수술방 턴을 정할 때, 나는 항상 피를 보지 않는 쪽을 택하려고 애썼다

다친 사람들은 보는 것, 상처를 보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를 주었기 때문이다

인턴으로서 응급실에서 근무할 때에도 나는 다친 사람들을 보기를 꺼렸고, 다른 일을 하며 위기를 넘기곤 했다.

나는 매우 감수서이 풍부한 사람이고, 그렇기 때문에 의사라는 직업에 걸맞지 않는다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인턴 생활을 하면서 노출을 피할 수 없는 순간들이 오기도했다

썩은 발가락을 소독하는 작업, 잘린 발을 보고 세척하는 일, 반은 잘리고 반은 썩어 문드러진 손을 소독하는 일들...

이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인데, 이제는 척척 일을 해내는 나를 보며 오묘한 느낌이 들었다

의사로서 성장하는 것은 마음이 돌처럼 굳는 일인지 문득 생각이 들었다

 

썩은 사지를 소독하기 전에 붕대를 벗기는 일은 매우 두려움이 고조되는 일이다

한 번도 보지 못한 환자의 소독은 더더욱 그렇다

얼마나 징그러울지, 병실에서 소리를 지르면 어떡하나 생각하는 순간, 붕대와 함께 사지를 감싸던 솜이 뭉텅 벗겨져나갔다

일부는 뼈가 드러나고 일부는 이미 잘려나갔으나 미처 희망을 놓지 못한 까만 손가락이 드러났을 때,

마음이 철렁하기는 커녕, 비현실적이고, 흥미롭고, 마치 미이라 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보기 싫은 것을 치우듯이 슥슥 소독을 하고 다른 업무를 보고 있을 무렵

부모님으로 추정되는 늙은 남성이 와서 내가 소독한 환자의 붕대에 싸인 팔을 붙잡고 흐느끼고 있었다

그제서야 내가 소독을 하던 사람의 나이가 채 40이 안되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부모님의 슬픔 속에서 아주 잠시동안, 상실감과 애석함에 공감하며 나는 유유히 병실을 빠져나왔다

 

누군가는 단 1초도 마주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을 계속 마주하며 덤덤하게 살아가는 나의 모습이

그 모습이 내가 매일 마주하는 미라같은 손가락보다 미라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누군가의 안타까운 사연보다는 나에게 주어진 과업이 과중함에 분개하며 매일매일을 살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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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분홍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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